2016년 6월 11일 토요일

빌립보서 1:27-30

빌립보서 1:27-30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는 주님의 우리를 향한 간섭과 잔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습니다.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들을 돕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을 비롯한 흉흉한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살인을 당한 여인,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 목격한 남자친구, 희생자의 가족들의 슬픔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건 이후 희생자에 대한 애도는 다른 성을 가진 자들에 대한 혐오로 변해 갔습니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갈등과 분열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도 그 예외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가 분열되고 쪼개지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원인은 무엇일까요? 심각한 신학적 견해의 차이? 아닙니다. 교회의 분열은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합니다. 이는 빌립보 교회이 다툼과 분열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서 두 여인 사이에서 갈등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에는 그 원인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약 윤리적 문제 혹은 신학적 문제였다면 분명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누가 옳고 그름을 언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원인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찮은 일에서 시작한 다툼이 무성하고 왜곡된 소문을 만들고, 그 것은 당파를 만들고, 이로 인해 서로를 미워하게 되어, 멀리 있던 바울에게 다툼의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 교회에서 균열과 공동체 와해가 일어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사도바울은 다툼과 분열은 성령 안에서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 마음으로 협력하라” 여기서 한 마음은 성령을 뜻합니다. 한 마음은 내가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우리 안의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정죄할 때 개인의 마음으로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성령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툴 수는 있지만 그 다툼은 오래가면 안됩니다. 그 다툼이 커져 다른 곳에 있는 바울에게 들린 것처럼 다툼이 커지면 안됩니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합니다.
특히 교회에서 균열과 갈등은 비본질 적인 것이 본질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비본질 적인 것이 우리 교회의 사명을 가로 막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받은 상처와 문제를 회복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회복하는 곳에서 다툼과 분열이 일어 난다면 교회는 그 사명을 다 할 수 없게 됩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교회에 있는데 편하게 교회에 와서 회복할 수 있을까요?

사회도 교회도 분열된 한국. 그러나 싸우고 분열하고 시기하고 질책하고 분열이 가득찬 이 사회에서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온전히 교회 밖에 없습니다. 이런 교회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교회 내에서 다툼은 사라져야 합니다. 가진 미움과 다툼, 빨리 해결되어야 합니다. (목사님께서는 기찬밤 이 자리에서 모두 해결하고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균열, 갈등, 다툼을 해결하는 이유는 우리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명의 회복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회복’이라는 교회의 사명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간섭, 잔소리)를 생각할 때입니다.

사탄은 태초부터 인간과 하나님의 사이를 분열시켰고, 사탄은 지금도 공동체를 분열로 이끌고 있습니다. 사탄의 분열의 유혹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신뢰와 관계를 지켜낸 욥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은혜와 사명을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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